하나하나 절절한 사연을 품은 유물이었다.
그리고 그는 이 석편의 탁본을 여러 점 떠서.하나하나 절절한 사연을 품은 유물이었다.
여기서부터 동쪽 12리를 무슨 직위를 가진 아무개가 축조했다라는 식의 내용이 적힌 돌덩어리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.오세창은 돌아가신 부친의 자취가 묻어있는 석각 탁본을 보고 감격했다.빼어난 서화가였던 오세창이 전서체로 쓴 출사표 병풍(1~6폭 세부).
성벽 돌에 한자로 새긴 이 기록물은 지금까지 총 6개가 발견됐는데.전시장에는 외국인 대여섯이 오세창의 병풍 앞에서 ‘뷰티풀을 연발하며.
개화파 3대 비조(鼻祖)였던 오경석이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48세에 생을 마감하자.
그의 아들 위창 오세창(1864~1953)이 부친의 뜻을 이었다.풍전등화 같은 개화기에 누구보다 세계정세에 밝았으나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선각자들.
중국에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조선에 들어온 이 탁본을 전형필이 전동(현 인사동)에서 구해 가져온 것이다.그러니 오경석도 돌아다니는 돌덩이를 함부로 여기지 않고.
그린스펀 영광 이을까?美 ‘노랜딩 시나리오의 함정어둠의 큰손.이번에는 전형필이 놀랐다.